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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간 전 영미권 수출
한줄평: 자꾸 소각하지마, 그러면...
★★★★
줄거리
안이지는 로버트 재단의 화가로서 계약을 맺게 된다. 계약 조항 중에는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다. 바로 로버트가 고른 작품 하나를 불에 태워야 한다는 조항이다. 안이지는 자신의 작품들 중 가장 소중한 작품을 지키고자 한다.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모작한 이유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삶 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인가.
<불타는 작품>(이하 <작품>) 출간 소식이 꽤 반가웠습니다. 왜냐하면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이하 <늙은 차>)에 똑같은 제목의 작품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국내 작가 중 한 명인데다, 재미있게 읽은 작품을 장편소설화한 셈이라 몹시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가 기발한 상상력을 사용해 독자의 상상력을 이끌어냅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무엇을 중점으로 말해야 이 책의 매력을 더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도 됩니다. 결국 제가 쓴 모든 서평후감이 그렇듯 가장 먼저 떠오른 걸 골랐습니다. 맨 처음 생각난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도 풍성할 테니까요.
안이지는 로버트 재단으로 찾아갈 계획이 틀어져 로버트 재단으로 가지 못하고, 숙박시설에 머물게 됩니다. 그곳에서 티브이를 통해 화재 소식을 접합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화재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러 지역으로 번집니다. 그 화재로 안이지는 궤도를 회복하지 못합니다. 그저 로버트 재단의 연락을 기다릴 뿐입니다.
화재는 마치 자연의 경고 같습니다. 인간은 가장 먼저 지구에 존재한 자연을 이용하여 진화한 생물입니다. 만일 자연이 없었다면 굶주림을 덜어줄 양식도, 위험에서 지켜줄 집도 마련하지 못했을 겁니다. 서로 멸망하지 않을 정도의 피해를 주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균형을 인간이 먼저 깨트립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그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집니다. 인간이 자신들이 이루어낸 결과를 자랑스러워하며 자아도취하고 있을 때,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 주던 비는 산성비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영양을 채워주던 자연 음식이 공해 속에 함부로 먹지 말아야 할 식품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인간은 자신들이 완성한 시대가 훌륭하기만 한 작품이 아니라고 알게 됩니다. 다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나무를 심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고. 물론 이런 사소한 실천도 도움이 됩니다. 다만 자연을 망가뜨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소설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화재가 진압되었다는 힌트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드러내는 힌트가 발견됩니다. 안이지는 자신의 작품을 사겠다는 딜러를 만납니다. 그리고 소각될 그림의 모조품을 그립니다. 그리고 진짜 작품과 바꾸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로버트에게 들켰고, 로버트는 두 작품을 섞은 뒤 진짜를 골라가라고 합니다. 안이지는 수많은 고민 끝에 하나를 골랐고, 자신의 그림을 사겠다는 딜러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그 딜러가 말합니다.
딜러는 내가 정말 그 그림을 빼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거기서 불타기로 되어 있었던 걸 빼돌렸다면 그건 더 이상 진짜가 아니다.
무언가를 소각해야 원하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소각할 대상이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계속 소각하니 자연이 스스로 삶을 포기해서 화재가 진압되지 않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 자연이 생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거지요.
어쩌면 저를 소각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걸 보니. 그래도 시스템을 탓하고 싶지 않으므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오늘도 교양 심리학 책을 읽습니다.
P.S. 혹시 소각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궁금하다면 <늙은 차>에 실린 <불타는 작품>
을 읽어보세요.
작가소개
윤고은
2008년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으로 한겨례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부루마불에 평양이 있다면》, 장편소설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 《도서관 런웨이》 등을 썼다. 이효석문학상,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 등 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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