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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망각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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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린 시를 제외하면 시를 읽은 적이 거의 없다. 소설은 어떻게든 제 경험을 끌어와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보겠는데, 시는 그게 어렵습니다. 시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시에서 어떤 시대를 다루는지 짐작도 어렵습니다. 그냥 제가 상상력이 없는 셈이지요. 친절한 소설도 즐기기가 어려운데 시는 오죽할까요. 그렇다고 시인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시인이 쓴 에세이나 산문을 읽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감수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수성을 기르려는 노력입니다. 시인의 작품을 많이 사서 읽지 않고, 몇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입니다. 그 중 한 명이 시인 정호승의 작품입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출간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제 시인 작품 시리즈를 업데이트하자고 생각해서 읽었습니다.

 

이 산문집에서 고통은 다양하게 변주됩니다. 인내가 됐다가 분노도 됩니다. 때로는 방황과 망설임도 됩니다.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까요? 한 순간만이라도 잊으려고 다른 집중할 것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한 순간만 떠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한 순간은 너무 짧습니다. 긴 인생 속에 몇 순간만 고통을 잊는다면 마음이 너무 버겁지 않을까요? 저자는 순간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용서를 제시합니다. 이 때, 용서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마음을 빠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고통을 느낀다면 어떨까요? 신체적 증상이나 태도로 드러납니다. 마음이 고통스럽다고 신호를 보내는 셈이지요. 그 신호를 무시하고 일상을 이어간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자신을 용서할 타이밍을 놓칩니다. 마음이 겪는 고통은 해소되지 못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 고통은 트리거와 마주치면 다시 되살아납니다.

 

이럴 때 저자의 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말은 큰 힌트가 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인생은 깁니다. 그러나 무한하지 않습니다. 유한합니다. 유한한 긴 인생 속에서 고통을 떠올리지 않는 순간은 짧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시간은 깁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아가는 자세는 필요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더 알차게 보내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 때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방법입니다. 그 방법이 곧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잘못만 마음에 새기고 방법을 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도 몸도 인생도 극과 극을 오가는 진동 상태에서 살아가는 셈입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자정능력이 괴멸합니다. 언젠가는 스스로 나아갈 힘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용서라는 말은 그저 사과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가 너무 어렵다는 걸 알기에 때로는 망각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용기를 주니까요.


저자 소개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으며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등을 출간했으며,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50년 전, 동시로 문단에 처음 들어섰던 그날의 마음으로 돌아가 동시집 참새를 시작으로 동화집 다람쥐 똥》 《항아리》 《쥐똥나무》 《물과 불등을 선보이며 우리 어린이문학을 한층 더 폭넓고 깊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구에 <정호승문학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