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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간다는 감각


줄거리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같이 사는 다미코. 해외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돌아온 리에. 가정을 꾸리며 사는 사키. 이 셋은 대학 동창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30남짓 만나지 않았다. 30년 동안 셋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모두 변하지 않은 듯하다. 한편 30년 동안 견고하게 쌓인 삶의 철학이 서로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 세 사람과 그들의 지인들이 엮어내는 일상 스토리.


우리는 꿈을 꿉니다. 꿈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꿈을 꾸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겠다는 뜻입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이 되려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을 맛보겠지요. 이런 과정은 어떻게 느낄까요.

 

소설에서 다미코는 병원에 병문안을 갑니다. 그곳에서 소원나무를 봅니다. 소원나무에는 소원쪽지가 달려 있습니다. 대체로 병을 낫게 해달라는 쪽지입니다. 다미코가 생각할 때, 환자에게는 병이 낫거나 낫지 않거나 두 가지 가능성만 있습니다. 당연히 환자의 소원은 완치입니다. 그러나 완치할지 어떨지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미코는 소원쪽지를 환자에게 밝은 생각을 하라고 강요하는 요소로 느낍니다. 그래서 소원쪽지를 적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병원에 청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사람은 심신이 건강해야 원만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다양한 자극을 받으며 꿈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병원을 다닌다는 것은 심신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자연스럽게 완치에 집중합니다. 꿈은 멀어집니다. 이것을 포기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그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났을 뿐입니다. 완치하면 다시 꿈이 고개를 들겠지요. 그런데 완치되기 전에도 꿈을 떠올릴 때도 있습니다. 치료 경과가 좋을 때입니다. 다시 꿈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직접 소원쪽지를 쓰면서 긍정적 마음이 생깁니다. 환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버팀목이 생기는 셈입니다.

 

어쩌면 완치는 운에 달린 일인지도 모릅니다. 치료 경과가 좋아도 마지막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기도 합니다. 전혀 완치할 가능성이 없었는데 기적처럼 완치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을 환자가 모를 리 없습니다. 완치하지 못하면 자신이 꿨던 꿈도 운이 따라야 꿀 수 있다고 씁쓸해 할지도 모릅니다. 이렇듯 환자가 부정적 감정을 느낀다면 다미코의 말대로 소원쪽지를 못 쓰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낫게 해 달라는 직접 써 보는 경험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아시나요? 존시는 거친 비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를 보고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고 완치합니다. 베어먼이 그린 잎새가 살아있는 잎새로 바뀝니다. 존시는 왜 잎새를 보고 희망을 느꼈을까요?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는 잎새를 보아서요? 아닙니다. 베어먼이 잎을 그려주었다는 운 때문입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자신의 걸작을 완성하고 싶었던 베어먼이 그린 잎새. 그 잎새는 소원나무의 소원쪽지와도 동일하지 않을까요? 소원쪽지들을 보면서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굳건히 버티는 환자가 나 이외에도 또 있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직접 병이 낫게 해 달라고 쓸 때 그 마음은 확고한 버팀목이 되겠지요.

 

소원나무는 단순히 완치를 바라는 소원쪽지를 걸어두는 나무가 아닙니다. 당신처럼 병 탓에 꿈을 꿀 기회를 놓친 사람이 많으니 낙담하지 말라고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맡은 나무입니다. 혼자서 앞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우니 같이 앞으로 걸어가자는 메시지입니다.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기꺼이 그 손을 붙잡고 같이 걸어가면 어떨까요? 세상은 혼자서 걸을 때보다 같이 걸을 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미코, 레이, 사키처럼.


저자 소개

에쿠니 가오리

청아한 문체와 세련된 감성 화법으로 사랑받는 작가인 에쿠니 가오리는 1989409 래드클리프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동화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폭넓은 집필 활동을 해 나가면서 참신한 감각과 세련미를 겸비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으로 무라사키시키부 문학상(1992), 나의 작은 새로 로보노이시 문학상(1999), 울 준비는 되어 있다로 나오키상(2003), 잡동사니로 시마세 연애문학상(2007), 한낮인데 어두운 방으로 중앙공론문예상(2010)을 받았다. 일본 문학 최고의 감성 작가로 불리는 그녀는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도쿄 타워,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좌안 1·2, 달콤한 작은 거짓말, 소란한 보통날, 부드러운 양상추, 수박 향기, 하느님의 보트,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뒤의 기억,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벌거숭이들, 저물 듯 저물지 않는, 개와 하모니카, 별사탕 내리는 밤등으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